사실 뻔한 이야기의 모음이다. 부끄러운 이야기이기도 하다.
금전적으로 도움이 되는것도 아니며 형체가 남지도 않는 그것을 사람들이 그렇게 가지고싶어하는 이유를 생각해봤다.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겨우 그 며칠간의 경험이 때로는 그가 남은 삶을 그 기억에 힘입어 살아가도록 하는 데에는 그것이 갖고있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겨울은 내가 줄곧 생각해오던 세상의 크기가 정말 작았다는걸 알게된 때였다.
새해를 앞두고 아빠를 만나러 갔다 왔다. 아주 어릴때 엄마가 언니만 데리고 아빠 보러가서 울었던 기억이 있다. 언니동생 없이 처음 엄마아빠랑 단 셋이서 보내는 시간이라 기분이 이상했다. 언니도 그때 이런 기분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나쁘지 않았다.
끈적하고 미지근한 공기가 마중나왔던 그 나라는 내가 생각한 휴가지는 아니었다.
저수지와 해변에는 물보다 쓰레기가 많았고 내벽과 바닥에는 곰팡이가 있어서 맨발로 돌아다니지 못할 정도였다. 밤이되면 검지손가락만한 도마뱀들 수십마리가 기어다니는 걸 봤다. 드라이기를 꽂았더니 숙소가 정전이 되었고 공중화장실은 항상 바닥이 젖어있었다. 처음 이틀은 아빠 근무환경이 이렇다는 사실이 안쓰럽고 죄송했었는데 괘씸하게도 다음날은 왜 이런 곳에서 자는것인지가 답답했다.
그 다음날 다르지만 상태는 더 나쁜 숙소로 짐을 옮겼다. 샤워장이 샘플봉지와 일회용품 쓰레기로 가득 차 있는걸 봤다 (폐기물 문제가 심각한 나라라는 것은 나중에 찾아보고 알았다). 발 디딜 틈 없이 빼곡한, 알 수 없는 냄새가 나는 쓰레기 산에서 더 이상 씻을수가 없었다.
꾹꾹 눌러왔던 짜증을 아빠에게 결국 내고 말았다.
내가 왜 화가나는지 아빠에게 분명하게 말할 수 없었다. 나도 내가 이런 이유로 아빠에게 화를 내면 안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나중에는 댈 이유가 없어서 여행에 동행했던 기사님에 대한 아빠의 태도를 트집잡았다.
아빠는 조목조목 알려주지는 않으셨지만 이 이야기들을 들었을 때 내가 얼마나 어리고 좁은 시각으로 이곳을 평가했는지 느꼈다.
일년의 절반이 우기인, 나무로 집을 짓는 이 나라에서는 습기란 불결한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존재다(그 기후가 없었다면 4모작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밤마다 나오던 도마뱀이 없었더라면 아마 나는 벌레가 가득한 집에서 자야 했을 것이다. 화장실 바닥에 물이 있었던 이유는 휴지 대신 물로 세정하는 문화 때문이다(물로 닦는 것이 어떤 방법과 비교해도 가장 위생적이고 환경적이다).
아빠와 20년 넘게 살았지만 당신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 분이신지는 잘 모르고 있었다. 그 날 엄마에게 들은 아빠의 모습은 나를 또 한 번 부끄럽게 만들었다. 원래 아빠의 현지 기사님은 나이가 있으셔서 아빠 동료들이 다른 기사를 쓰라고 했다고 한다. 아빠는 그 분을 이미 고용했고 일에서 실수하는 것도 아닌데 왜 잘라야 하냐고 했단다. 언제는 한 번 기사님 집에 에어컨을 선물하러 갔다가 에어컨을 쓸만큼 집 전력이 충분하지 않아서 결국 선풍기를 선물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엉엉 울었다. 함께 일하는 사람을 가족으로 대하는 아빠의 배려를 위선 취급한 게 부끄러워서. 여행이 즐겁도록 최선을 다하신 아빠의 마음을 외면한 내가 너무 싫어서. 내 예민함과 어리석음으로 여행을 모두 망쳐버린 것 같아서. 그리고 아빠가 분명히 나에게 실망하셨을 것 같아서.
두 분은 그날 나를 탓하지 않으셨다. 내가 예민한 건 맞지만(ㅋㅋ) 그게 나쁜건 아니라고 했다. 예민하기 때문에 다른 이들이 못보고 지나치는 무언가를 볼 수 있다고, 그런 사람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꿀 수 있다고 다독이셨다.
그날이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가는 날 저녁이었다. 나는 울고있는데 저기 너머 골목에서는 새해 자정에 맞춘 노랫소리가 들리는게 새삼 웃겼다. 두 분은 새해니까 울지 말자고 나를 또 한 번 달래주셨고 우리는 잠시 숙소 밖으로 나갔다. 숙소에서 새해 선물로 받은 작은 불꽃놀이 스틱을 태우면서 그 날을 마무리했다.
아빠는 내가 울 때마다 재미있다고 했다. 도대체 이런 애가 어떤 방법으로 세상에서 살아남을지 궁금해서라고 하셨다. 당신은 월요일마다 국제고 앞까지 데려다주셨던 내 고등학교 3년이 인생에서 가장 즐거운 순간 중 하나였다고 항상 말씀하신다. 부끄럽게도 나는 차에서 라디오 소리가 너무 크다고 아빠에게 짜증냈던 기억밖에 없다. 끝도없이 철없는 이 아이가 가끔 생각보다 깊은 이야기를 꺼낼 때, 상상하지 못한 성취로 당신의 자랑이 될 때마다 새로운 기쁨을 느끼신단다. 그래서 내가 이다음에 어떤 사람으로 성장할지 가장 기대되는 아이라고 하셨다. 하필 그 말을 마지막 날 공항에서 하셔서 또 울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아빠가 대통령감이지 않냐는 엄마의 주접을 듣고 피식 했던 것이 그 여행의 가장 마지막 인상이다. 돌아와서 어릴 때 아빠께 썼던 메일을 찾아봤다. 대단한 감정을 느끼지는 못했고 좀 웃었다.
다음주에 아빠가 한국에 들어오신다. 나는 늘 그랬던 대로 예민하고 짜증은 있는대로 낼 것이며 내가 아는 세상이 전부라고 믿을것이다.
뭔가 바뀐 것 같긴 하다. 역시 그게 무엇인지는 설명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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